북송(北宋)
정요(定窯) 아백획화회문차탁(牙白劃花回紋茶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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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5.0cm 구경(口徑) 14.5cm 저경(底徑) 3.5cm
전형적인 송대 차탁(茶托) 형태와 구조는 「탁반(托盤)과 붙어있는 완(碗)과 비슷한 형상, 바닥 없는 중간 부분, 그리고 하단의 다리 받침」이다. 상단에는 복부가 깊은 완과 비슷한 형태가 있는데, 이는 차탁의 탁권(托圈)이다. 기벽이 깊은 이유는 그 안에 잔을 집어 넣기 위해서이다. 중간은 비어있고 바닥이 없다. 탁반과 권족의 테두리에는 동이 상감이 되어 있으나, 탁권의 구연부 가장자리에는 금속 테두리가 둘러져있지 않다. 탁반은 넓고 둥근 형태를 하고 있으며, 권족은 다소 높고, 바깥으로 살짝 삐쳐있다. 권구(圈口)와 반구(盤口)에는 각획(刻劃)한 회문(回紋)이 한 바퀴 둘러 장식되어 있다. 유색은 희고 태질은 매끄럽다.
남송 말의 주밀(周密)은 《제동야어(齊東野語)》라는 책에 송대 사람들은 차를 마실 때, 다잔과 차탁을 함께 든다고 기록하였다. 이를 통해 차탁과 다잔은 함께 사용하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요송(遼宋)의 벽화 혹은 다화(茶畫)에 묘사된 다반과 차탁도 일반적으로 함께 그려져있다. 차를 마실 때, 한 손은 받침 부분을 잡고, 또 다른 손은 잔 부분을 잡는다. 남송의 주계상(周季常)과 임정규(林庭珪)가 그린 <오백나한도(五百羅漢圖)> (1178-88)혹은 1959년 출토된 산서(山西) 효의현(孝義縣) 장가장(張家莊) 금묘(金墓)의 〈전조사녀도(磚雕仕女圖)〉를 통해서도 송대 사람들이 잔을 쥐는 방식을 확인해볼 수 있다.
송대 정요(定窯)의 생산량은 상당히 많았는데, 조공으로 바쳐지는 최상급 작품을 제외한 대부분은 일반적으로 백성들이 사용하는 일상용기였다. 완(碗)과 반(盤) 종류가 가장 많았고, 차탁은 작품 수가 굉장히 적었는데, 이는 궁중의 주문 작품이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북송 초기까지만 해도 받침이 있는 탁권이 사용되었다.
그 예로 정주(定州) 정지사탑(靜志寺塔)터에서 출토된「관(官)」자 낙관이 있는 차탁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송대에 와서는 그 형태가 받침은 있되, 중간은 비어있지 않는 형태로 변한다. 이는 당 5대에서 송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작품이며, 송대 중기 이후부터는 중간이 비어있는 형태로 변한다. 이는 여요, 관요, 경덕진의 청.백자뿐만 아니라, 칠기 및 금은기에서도 같은 구조를 보인다. 검은 차탁은 흰색의 다잔과, 붉은 차탁은 검은 다잔과 한 쌍을 이루며, 흑백 혹은 홍흑의 대비가 상당히 매력적이다.한편, 《제동야어(齊東野語)》에서는 집에 우환이 있을 때는 붉은 차탁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